「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유숙자 옮김)
“어디서 벌 건 다 마찬가지죠. 징징거릴 필요 없어요. 그걸로 족해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건 오직 여자뿐이니까.”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이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소설의 문장 중 백미로 뽑는「무진기행」의 서두를 발췌한 것이다. 김승옥이 스무 살의 나이에 쓴 이 소설은 문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세간의 조명을 받았으며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세에도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세지나 제시하는 깨달음에 빼어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단편 소설이 그렇듯 우연적인 사건의 발생과 모호하고 흐리멍덩한 마무리로 특징지어지는「무진기행」은 그럼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야릇하고 신비스러운 여운을 오래도록 가지게 하는데 성공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가치가 멈춰섰다.”
「설국」을 여는 이 몇 개의 간결한 문장은 일본어의 운율을 그대로 살리며 짧은 서술로도 눈의 정취를 탁월히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무진기행」과「설국」은 모두 고향과 여행지에 새롭게 도착하는 주인공이 그 고장의 풍경을 운치있게 묘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전자는 제목에 나타나는 대로 무진 지방을 후자는 일본의 니키타 현을 배경으로 하며, 무진을 대표하는 것이 안개라면 니키타 현은 폭설이 고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설국」의 주인공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층으로 무위도식으로 지내는 청년 시마무라다. 도쿄에 부인을 남겨두고 그는 곧잘 다른 현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이때도 국경의 산들을 돌아다니다 니키타 현의 궁벽한 온천 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여관방에 유숙하며 시마무라는 무료함을 달래려 게이샤를 불러달라 청하였는데 마을에 게이샤가 모자란 이유로 고마코라는 아가씨가 대신하여 오게 되었다. 그런데 질탕한 음분을 기대했던 애초의 바람과 달리 고마코는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분위기의 처녀였다. 결국 시마무라는 고마코 대신 양심의 가책 없이 희롱할 수 있는 게이샤를 부르는 데 성공했으나 그녀 마저도 그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돌아갔던 고마코가 술에 잔득 취하여 그가 묵는 방에 다시 나타나 그에게 이래저래 속살거리며 관심을 표해오는 것이었다. 시마무라의 품에 기댄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겠다며 갖가지 배우들의 이름을 적더니만 마침내는 시마무라라고만 무수히 적어나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전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갔고 시마무라 역시 날이 밝는 대로 도쿄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까지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인연이 싹트게 된 사연이며 소설의 도입부는 그가 그녀와 재회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폭설이 쌓인 니키타 현에 돌아오는 상황에 해당한다. 한편 시마무라는 이 열차에서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가던 어느 여인에 매혹을 느낀다. 밤길을 달리는 열차의 유리창에 비치는 건너편의 여인은 환자로 보이는 젊은 남성을 간호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까닭에 그녀의 모습은 더욱 청초하게 여겨졌다.
마을에 도착해 예전과 같이 온천에 머물며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른다. 고마코는 붉어진 얼굴로 그가 오기까지 하루하루 헤아린 날짜를 이야기하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시마무라 역시 그녀와의 만남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차에서 목격한 여인에 대한 호기심을 차마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 옆에 있던 환자의 정체에 대해 고마코에게 묻자, 고마코는 그 환자는 자신이 기숙하는 춤 선생님 집의 아들이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 외에, 정작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밝히지 않는다.
고마코는 정식으로 게이샤로 나서 손님을 접대하느라 바쁘면서도 밤이 이슥하면 하루도 예외없이 시마무라의 방에 찾아와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던 나날이 이어지던 중 시마무라는 마을의 어떤 안마사로부터 고마코에 대한 풍문을 전해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인즉슨 고마코가 춤 선생 아들과 약혼 관계이며 그 환자를 보살피기 위한 비용을 위해 게이샤로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고마코는 자신에 관한 속설을 거짓이라 항변했지만 시마무라는 그녀와 요코 그리고 환자에 대한 의문을 떨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의아함을 가지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결핵을 앓던 그 환자는 시마무라가 떠나던 날 결국 임종하게 된다.
다시 일 년이 지난 가을날 시마무라는 다시 니키타 현을 방문해 고마코와 만난다. 고마코는 한참만에야 찾아온 시마무라에 대해 서운해 하면서도 1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잊지말라고 찾아와 달라는 부탁을 늘어놓는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자신에 대해 가진 애정이 염려스러우면서도 그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한계에 의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애석함을 느낀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여전히 열차에서 봤던 요코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죽은 환자의 묘를 보살피던 요코와 마주치는데 그녀는 자신이 도쿄로 돌아갈 때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런데 다시 시마무라가 돌아갈 채비를 하던 와중 마을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창고에서는 영화 상영을 이유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이에 피해자가 많았는데 화재 현장에 도착한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건물에서 추락하는 한 여인을 목격한다. 그 둘은 그 여인이 유코라는 걸 깨닫고 고마코는 사람들을 헤치며 그녀에게로 달려나간다.
소설은 이처럼 다소 갑작스러운 결말로 끝을 맺는다. 유코는 정녕 그 죽은 환자의 새로운 애인이었던 것인지 여전히 묘연한 정체로 궁금증을 남긴 채 비극을 맞는 것이다. 휴양을 떠난 시마무라와 니키타 현의 작은 촌에서 게이샤에 매인 생활을 하던 고마코의 반복된 만남이 이 소설이 갖는 서사의 전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독자에게 풍요로운 느낌을 전달하며 여전히 사람들이 설국의 언저리에 머뭇거리도록 만든다. 소설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소설이 전달하는 울림이 가장 성공적인 공명의 체험을 거두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설국」은 소설에 대한 이와 같은 근원적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타인의 체험은 어떻게 공유되는 것인가. 우리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의사 소통의 매질 속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은 시각적이건 음성적이건 간에 메세지이며 그로써 상대의 체험과 느낌에 대한 이해를 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가 실패를 겪는 순간이 있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격렬한 감정을 지닐 수록 쉬이 표현키 어려운 독자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을 수록 말은 언제나 모자란 것이 되고 만다.
“어제 사과밭에서 본 사과 빛깔이 너무나 선명히 붉었어.”
이를 듣는 청자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사과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총동원한다. 우리가 소유하는 단어의 표상은 우리가 가지는 경험의 총합이다. 우리는 저 사과의 붉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접촉한 모든 사과의 누적된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중에 가장 선명한 붉음을 채택한다.
따라서 저 간단한 문장 안의 ‘선명히 붉음’은 각자의 사람들에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신이 가진 경험의 내용이 협소할수록 공감의 질은 조야해지는 반면 화자가 전달하려는 것 이상으로 풍부한 이미지를 소유한 사람은 단 두개의 단어로써 황홀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너무나’라는 단어가 가진 진폭에는 한계가 없다. 자신이 가진 붉음에 대한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곧 ‘너무나’의 진폭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몰이해를 극복해야 하는가.
답은 상상력에 있다. 물론 가진 재료가 없으면 이를 마음대로 꾸미며 수정하는 상상의 작용 역시 빈약해질 염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로 나가야만 하는 책무를 가진다. 세계는 그 자체로 진리의 덩어리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완성을 도모하는 것일뿐 결코 그 끝모를 세계에 도달한 자로서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할지언정 내면의 재료들을 조합하여 인간의 유한함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문학의 묘사가 진리에의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문학의 비유가 겉치장에 머무는 순간, 그것들은 잉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의 독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부추기는 촉매로서 기능할 때 문장은 일상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전달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문장이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상상력이 동원될 이유야 없다. 그러나 그처럼 강렬한 인상은 잠시만 멀어져도 그 생생함을 상실하고 만다. 기억에 문학적인 서사가 따라붙지 않으면 그것은 외양에 대한 데이타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메타포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 비유를 사용한다. 이는 순간의 충만함을 움켜쥐고자 벌이는 노력으로 지칭이 갖는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보통은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가장 진리값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언어 체계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앞 선 문장은 ‘붉음’을 기록하기 위해 ‘너무나’라는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지칭어는 사물의 형해만을 나타낼 뿐이다. 사물의 온도와 내음과 그에 담긴 시간의 감각마저 서술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색채의 이미지가 필요하며 비유는 그것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실상에서는 아무련 관련을 갖지 않는 각각의 사물들이 머릿속에서 섞여 서로 혼합된 심상이 될 때, 그 이미지는 비록 현실 자체의 색상은 아니지만 현실을 닮은 색채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할 수 있다.
짧은 단상이지만 문학의 묘사가 갖는 진실에의 의의가 조금은 분명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어는 인간 내면의 풍부성을 타인과 공유하는 일에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문학을 향유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만나는 탁월한 묘사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허위와 포장으로 가득한 과시적 글쓰기가 독자를 어지럽히는 세상에서 청미한 문장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설국」은 독자를 기쁘게 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이미 무언가로 마음이 잔뜩 가득해지는 방식의 체험은 소설 읽기의 지평을 한층 끌어올린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방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을,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 하고 눈 온 뒤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본 고마코가 말한 적이 있었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 퍼졌다.”
“가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는 거의 날마다 죽어가는 벌레들이 있었다.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벌은 조금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걷다가 쓰러졌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마는 조용한 죽음이었다. 다가가보면 다리는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 창문철망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미 죽은 채 가랑잎처럼 부서지는 나방도 있었다.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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