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외톨이」 - 박형서
만남과 헤어짐을 겪을 때마다 누구나 조금씩 멸망해간다
“옛날 미얀마라 불리던 나라의 바닷가 동굴에 금술 좋은 박쥐 부부가 살았다. 둘 다 나이가 많아서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었는데, 낮이면 사람의 모습이 되어 손도 잡고 다정히 거닐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어두컴컴한 폭풍에 휘말려 둘은 그만 서로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박쥐 남편은 박쥐 아내를, 박쥐 아내는 박쥐 남편을 찾아 미친듯이 헤매었다. 둘은 파도가 밀려난 해변에서 마주쳤다. 서로 힘껏 부둥켜안고는, 지난 하루를 따로 보낸 게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일 년 동안 울었다.
성범수는 이 전설을 만나는 사람마다 들려주었다. 특히 ‘지난 하루를 따로 보낸 게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일 년 동안’ 부분을 좋아했다. 하지만 매번 듣는 이의 반응은 폭소를 터뜨리거나 혹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쪽도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으므로 성범수는 머쓱한 얼굴이 되어 시선을 비스듬히 돌리곤 했다. 마치 자기 편을 찾는 듯이,
그러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내가 틀림 없이 거기 있어 메뚜기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이정선 <외로운 사람들> 중에서
누구에겐 사람이 흔하고 누구에겐 사람이 귀한 법이다.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기 어려운 조건 밖에는 가지지 못한 인간의 불우는 드러내놓고 슬퍼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 이외에 별다른 처세가 없다.
성범수는 그처럼 고독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일찍부터 체념에 익숙해졌으며 사랑 같은 건 아예 자기 몫으로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도 갑작스런 인연이 찾아온다. 그것은 우연히 만난 그의 중학 동창이었다.
그녀 역시 변변치 못한 외양 탓에 주인공처럼 사람들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마주친 성범수에게 먼저 다가가 이 둘은 이내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성범수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신의 태도 변화라 여겼다. 남들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그는 대단한 감격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결혼 후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물놀이 중에 그만 바다에 익사하고 만 것이다. 가까스로 살아난 성범수는 이때부터 대단한 반역을 꿈꾼다. 그것은 바다에 대한 복수이자 신의 질서에 대한 복수로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키는 계획이었다.
“만약 아내가 말라리아로 죽었다면 성범수는 모기를 멸종시켰을 것이다. 만약에 아내가 칼에 찔려 죽었다면 철기문화를 파괴했을 것이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면 만유인력을 해체했을 것이다.”
성범수는 이후 과학자의 길을 걷고, 첨단을 달리는 연구에서 혁혁한 성과를 얻어내 물질의 생성에 대한 모든 비의를 밝혀내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거듭된 승승장구 속에 그는 마침내 대역전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반역에 성공하여 바다를 소멸시킨다.
이 복수의 과정은 공상과학소설의 형식으로 자세히 전개된다. 그러나 나로써는 익숙지 않은 용어들을 읽어가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허구의 내용인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실과 거짓의 그 오묘한 경계에서 발전해나가는 허구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물론 내 과학적 식견이 부족한 탓이지만 여하간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게 복잡다단한 데 있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복수극을 품을 만큼이나 성범수는 왜 신에게 분노해야 했을까. 잠시나마 찾아왔던 사랑은 그에게 대체 얼마만한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사랑이 흔해질수록 사람은 아쉬움의 여백을 잃는다. 효율적인 근래의 관계는 언제나 대리를 예비해둔다. 다음이 있고 또 그 다음이 얼마든지 있다. 개별로서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들은 뭉뚝한 대중의 칼날 속에 모조리 깎여나가고 인간의 사랑은 마치 블록의 결합처럼 단순한 연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의미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루를 못 본 원통함에 일 년을 슬퍼했다는 이야기의 감격에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이 사실이 마냥 아쉽고 따라서 문학을 붙잡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을 확신하며 각자가 가진 감관에 한없는 신뢰를 보내지만, 실상은 어떠한 시선도 의미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이 지금을 붙들고 미래를 개척해간다. 당신들의 그 건조한 사랑 역시 의미의 전개이며, 다만 그 의미의 수준과 내용이 모자랄 뿐이다.
‘당신만이’
라는 생각에 한번도 빠져보지 않았던 이는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다. 존재의 부피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사랑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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