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안고 – 산문집 중 「일본 문화 사관」
인간은 오직 인간만을 사랑한다. 인간이 없는 예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이 산문은 패전 후의 일본이 재생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실용적 미학 정신을 권유하는 글이다.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일본의 ‘이이토코토리’에 대한 반복적 언급임에도, 이 과정에서 풀어놓는 미에 대한 독창적인 안고의 철학은 매우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은 그의 비판에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정도야 당면한 시제적 과제에서 어찌할 수 없는 고집 정도로 감안하면 된다.
미란 여러 기층을 두고 있으며 일상은 그 기층의 하나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언제나 주위에 있어 흔해진 것들, 그래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것들, 오직 기능으로 남은 것들, 이러한 사물들에서 재발견하는 미는 인간에게 충분한 감동을 제공한다. 미는 일상에서 곧잘 망각되나 그 망각으로 인해 언제나 붙어 있으며 그래서 문득 마주쳤을 때 더욱 반가운 감격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보존하려는 전통에는 실질이 있다. 실질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이야기들로 그것을 채색하여 진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옛 사상을 탐구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진실에 조금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보아왔다.
따라서 안고의 실용 미학은 50년대의 일본에게만 요구되는 태도가 아니다. 미의 기저에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것을 감추고 겉만 호사하게 꾸며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모독이 지금도 만연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이름이 너무 흔하게 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일본적이라고 하는 것
“타우트(독일의 건축가)에 따르자면 일본에서 가장 속악한 도시에 해당하는 니키다티에서 나는 태어났고, 그가 멸시하고 혐오한다는 장소인 우에노에서 긴자로 이어지는 거리, 그곳의 네온사인을 나는 사랑한다. 일본 전통 다도 따윈 전혀 모르는 대신 제멋대로 술 퍼마시고 정신 없이 취하는 일에만 정통한 나는 고독하게 홀로 집에 거할 때도 도코노마 같은 것에 대해 한 번도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 생활이 조국의 찬란한 고대 문화의 전통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빈곤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눈(피에 굶주린 증오를 띤)은 일본인에게는 없다. ~오히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고 하는 식의 적당주의가 일본인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교토의 사찰과 나라의 불상이 전부 없어져도 곤란할 건 없지만 전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일본을 발견할 것도 없이 실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대 문화를 상실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일본을 상실할 리는 없다. 일본 정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그런 것을 우리 자신이 논할 필요도 없다. 해석되고 설명된 정신으로부터 일본이 생겨날 리 없으며, 또 일본 정신이라는 것이 설명 가능할 리 없다.”
2. 속악함에 대해
“마이코(게이샤를 준비하는 예비 견습생)의 기모노가 댄스홀을 압도하고 리키시(스모 선수)의 의례가 국기관(스모 경기장)을 압도한다해도, 전통의 관록만으로 마이코나 리키시가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무넺는 전통이나 관록 그 자체가 아니라 실질이다.
“내가 거리로 나설 때는 환락을 찾거나 고독을 구하는 경우 둘 중 하나다. ~사원은 건축물을 통해 고독을 암시하려 한다. 밥 짓는 냄새라든가 아내와 아이들 등을 연상시키지 않고 일상의 마음, 속된 마음과 절연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히데요시의 건축, 산주산겐도의 담장, 치샤쿠인의 병풍에 대한 예찬
“천하를 손에 넣은 장군들은 많지만 천하 제일의 정신을 가진 자는 히데요시 뿐이다. 킨카쿠지(금각사)도 긴카쿠지(은각사)도 무릇 천하제일의 정신으로부터는 인연이 먼 소산이다. 이른바 돈 많은 풍류인의 도락이었다. ~히데요시에게는 풍류도 도락도 없다. 그가 하는 일 전부가 하나 같이 천하제일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다는 광적인 의욕에서 비롯한 것이다. 주저한 흔적도 없고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나 보았다는 형적도 없다. ~척 보기에 추악하고 전혀 아름답지는 않은 것일지라도 사람의 비원과 연결될 때 온전히 가슴을 치는 것이 있다.”
“나는 료얀사의 석정에서 휴식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때로 아라시야마 극장의 무대 연극을 바라보며 사념에 잠기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인간은 오직 인간만을 사랑한다. 인간이 없는 예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인간으로 향하는 향수가 없는 나무 아래에서 휴식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된 것, 따분한 것은 멸망하든가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3. 집에 대해
“집이라는 것은 혼자 살아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따라붙는다. ~돌아간다고 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반성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러시아에 이르기까지의 나폴레왕과 히틀러도 한 번도 퇴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 같은 대천재도 결국 집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이상은 역시 내 경우처럼 후회와 슬픔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을 터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문학은 바로 그렇게 돌아간 곳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일매일 일요일이고 사장도 직공도 없고 매일 낚시를 하거나 술 마시고 지내면 자유롭고 즐거울 거라고 한다. 하지만 자유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눈치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개량가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인식 역시 이것과 오십보백보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면 난 오히려 문학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난 문학만능주의자다. ~본연적인 인간의 성찰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문학을 신용하지 못하게 되면 인간을 신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4. 미에 대해
미적 장식이 없는 실용적 건축물을 보고
고스케 형무소 :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아름다움으로 나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이다.”
드라이 아이스 공장 : “미적인 고려 따위는 일절 없는 오직 필요에 따른 설비만으로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어 있다. ~이 공장은 내 가슴에 파고들어 머나먼 향수로 이어져가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호류사나 뵤도원은 고대라든가 역사와 같은 관념을 염두에 두고서 그에 맞추어 뭔가를 납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직접적으로 마음에 부딪혀 와 창자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것이 아니다. 무언지 모를 부족함을 보충하지 않으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구축함 : “그 아름다움은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고스케 형무소와 드라이아이스 공장과 군함, 이 세가지를 하나로 묶어 그 아름다움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세가지가 왜 그토록 아름다운가. 여기에는 아름답게 하기 위해 가공한 아름다움이 일절 없다. ~오직 필요한 물건 만이 필요한 장소에 놓여 있다. ~그것은 그 자신을 닮았을 뿐, 다른 무엇과도 닮지 않은 형태다. ~모든 것은 오직 필요에 따른 것이다. 그 외의 어떤 구래의 관념도 이 필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생성을 막는 힘이 될 수 없었다.
내가 업으로 삼는 문학 역시 전적으로 그와 마찬가지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한 줄의 글도 있어서는 안 된다. 미란 특별히 미를 의식하며 시행한 곳으로부터는 생겨나지 않는다. 꼭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쓸 필요가 있는 일, 오직 그 막을 길 없는 필요의 요구에만 응해 써내야 한다. ~이 ‘막을 수 없는 실질’이 요구하는 바 독자의 형태가 미를 낳는다. 실질로부터의 요구를 벗어나 미적이라든가 시적이라고 하는 입장에 서서 기둥 하나라도 세우면 그건 이미 유치한 세공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산문의 정신이며 소설의 진수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예술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은 실질의 문제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은 자연스럽지 않고 결국 진짜가 아니다. 요컨대 공허하다. 그리고 공허한 것은 그 진실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 결코 없으며, 결국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다. 호류사도 뵤도원도 불타 없어진다 해도 전혀 곤란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호류사를 부수고 정거장을 만드는 게 좋다.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나 전통은 그것 때문에 결코 멸망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바라크 지붕 위로 노을이 내리고, 먼지 때문에 맑은 날에도 하늘은 흐려 있으며, 달밤의 경관 대신 네온 사인이 빛난다. 여기에 우리의 실제 생활이 영혼을 뿌리내리고 있는 한 이것이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생활이 건강한 한, 서양식 싸구려 바라크를 모방하고 의기양양해 한다 해도 우리의 문화는 건강하다. 우리의 전통도 건강하다. 필요하다면 공원을 갈아엎고 채소밭으로 만들라.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반드시 거기에서도 미가 배태된다. 그곳에 진정한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생활하는 한 원숭이 흉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진정한 생활인한 원숭이 흉내에도 독창과 동일한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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