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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노트

달 - 히라노 게이치로


「달」- 히라노 게이치로





자연이 그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에 도달한 순간에는 어떠한 시구도 모든 힘을 잃고 말리라는 것을. 그 순간에 시는 결코 떠오를 수 없으리라는 것을.




1897년 일본의 나라 현, 이하라 마사키는 자신의 정신쇠약적 기질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자유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그가 행선지에 대한 고민에 싸여 있을 즈음 우연히 지나치던 서구적 차림색의 어느 여인은 요시노행을 권유한다. ‘벚꽃이 다 져도 요시노는 아름다운 곳인걸요.’ 그곳에 가면 그 아름다운 여인과 재회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로 그는 요시노를 통과하는 열차에 오르게 된다.

열차에서 그는 구마노 본사로 간다는 한 노인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노인은 다짜고짜 그가 자신과 함께 구마노 본사로 가야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마사키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노인에게 정신이 팔려 어느 틈에 요시노를 지나치고 결국에 종점에 다다라서야 열차에서 내리게 된다. 그런데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날개에 붉은 점을 가진 한 제비 나비 한 마리가 노인의 손 안으로 날아드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제비나비는 앞으로 마사키를 인도하는 환영이 된다.    

함께 여행을 하자던 노인은 무슨 영문인지 함께 숙소에서 머물고 난 다음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홀로 길을 나서던 마사키의 눈 앞에는 어제 목격한 그 붉은 점의 제비나비가 다시 나타나고 그는 그것을 따라 왕선악이라는 깊은 산중까지 이르게 된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어둠 속에서 그는 또다시 꽈리 열매 같은 붉은 형체를 발견하는데 나비인가 싶어 그것을 좇다 살모사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혼절한다. 

눈을 깨고 나니 자신은 암자로 보이는 조그마한 가옥에 누워있고 주위에는 어느 노승이 앉아 있다. 노승에 말에 의하면 자신이 사흘 가량 의식도 없이 잠만 내리 잤다는 것이다. 그는 보름 가량 그곳에서 선승의 간호를 받으며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유숙한다. 노승은 마사키가 차도를 보이고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자 곧 이곳을 떠나줄 것을 부탁하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이 암자에는 노승 이외에 죽음을 기다리며 은거하는 나병 노인이 살고 있는데 그 이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마사키는 매일 밤 의문의 여인이 등장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게 되고 결국에는 그 환영의 여인이 가진 아름다움에 매혹당한다. 그리고 그 매혹은 나병 환자가 머물고 있다는 암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하여, 어느날 밤 마사키는 노승 몰래 그 암자로 찾아간다. 거기서 마사키는 노추한 노파 대신 젊은 여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노승이 했던 저속한 거짓말에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노인의 강요로 마사키는 왕선악을 떠난다.

왕선악을 떠나 오타니의 어느 여숙에 머무는 동안 그의 상처는 더욱 악화된다. 여주인과 하녀들의 간호를 받으며 회복하던 마사키는 어느날 여주인으로부터 왕선악에 관련한 미신을 듣게 된다. 내용인즉슨 자신이 어린 시절 친히 따르던 다키라는 언니가 있었는데 그녀가 왕산악에 들어갔다가 회임한 채로 돌아오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키는 자신이 커다란 뱀의 아이를 가졌다고 요령부득의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여자 아기를 낳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의 눈에서 느껴지는 뱀의 환영에 공포를 느껴 아기는 부모의 손에 의해 대신 길러지고, 다키와 가족들은 의문스럽게도 연이은 죽음을 맞는다.   

다카코라는 이름의 아이는 결국 왕선악의 선승에게 맡겨져 그의 손에 길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화를 듣게 된 마사키는 곧장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왕선악으로 돌아간다. 산을 헤매는 동안 병세는 더욱 악화되며 의식마저 흔들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꼭 만나고 말리라는 정열에 휩싸인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제비나비의 환영에 인도되어 마사키는 마침내 그녀의 암자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내려진 뱀의 저주가 마사키마저 죽음으로 이끌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와 만나지 않으려 한다. 마사키는 언젠가 잃어버릴 목숨이라면 그 때는 바로 지금이어야만 한다며 죽음을 불사한 각오로 그녀를 설득한다. 결국 그가 가진 진심에 마음이 동한 그녀는 자신 역시 마사키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그에게 얼굴을 내비친다.

다음날 노승이 찾아간 암자에는 평온히 잠든 듯한 다카코의 시신과 홀연히 날아오르는 바라보기도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가 있었을 뿐이었다.


「달」은 「일식」에 이은 게이치로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일식」과 같이 종교적인 경건함이 작품 전체에 온전히 흐르며 결말에 이르러 성취하는 합일의 장면이 인상적이다. 비교적 간략히 적으려 노력한 줄거리는 사상할 수 없는 내용을 첨가하다보니 조금 길어진 듯하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환기하는 주제적 측면은 조금도 담지 못한 꼴이 되었다.

그것은 이 소설이 전달하는 바가 그 압도적인 몽환의 분위기에 대부분의 역할을 내주고 있기 때문으로 주인공의 겪는 서사와 다카코의 불우한 환경 같은 것은 단지 작품의 이해를 조력하는데 그친다. 

미목수려한 청년 마사키가 가진 정신쇠약적 기질의 바탕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이 있다. 글에서는 그것을 악마나 아수라 같은 것들이 그들 본래의 추함에서 벗어나 자체의 매력을 발휘하는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묘사한다. 마사키는 자신의 정열을 해소하고자 정치적 행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데서 온전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접하게 된 낭만주의 시는 그의 이러한 욕구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마사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정열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숙명적인 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병은, ‘참으로 살아있다’ 는 감각을 위해서 천천히 나날을 쌓아가며 그 끝에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순간적 초월, 지속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순수한 양양,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뒤 한번 안 돌아볼 치열한 충동의 체험을 갈구했다.”


“그러나 정열을 따르기에 마사키는 지나치게 지적이었다. 정열이 행동에 연결되려는 순간, 마사키는 그때마다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 들이고 한 걸음 물러서서, 궁리하는 것이다. ~ 그러는 동안에 정열은 시시각각 식어간다.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식어가는 것이다. ~ 허망하게도 정열이 있던 그 자리에는 반드시 둔중하기 짝이 없는 추괴한 덩어리가 남고 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장은 작가의 미학적인 감각이 얼마나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인지 잘 헤아릴 수 있다. ‘아름다움’이 가지는 순간성, 온전히 살아있는 원형 그대로의 감각을 얻기에 마사키에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실망스러운 것들 뿐이었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정신 쇠약을 낳게 한 원인이다.


“시 창작에 따르는 내면으로의 침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사키를 생활로부터 격리시켜 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세계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사키는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각으로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육체의 고통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마사키가 자신 삶의 돌파구로서 여행을 선택한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그가 발견된 최대한의 활동이 비록 시에 있었고 그에 재능을 지니기도 했던 것이지만 여전히 시에는 정열이란 게 미흡했다. 저 밖의 세계와 시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그는 직접 세계를 만나야만 했다. 


“자연의 풍정에 대해 마사키는 어떤 신비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당시의 수많은 낭만파 시인들 중에 기질적으로 그만이 지닐 수 있었던 진정한 낭만주의적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사키는 믿고 있었다. 자연이 그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에 도달한 순간에는 어떠한 시구도 모든 힘을 잃고 말리라는 것을. 그 순간에 시는 결코 떠오를 수 없으리라는 것을. ~ 그것은 자연의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을 마주한 순간, 인식 주체인 인간은 대상인 자연과 극적으로 일체가 되기 때문이었다. 인식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묘사해야 하는 자신과 묘사의 대상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사키는 그 법열에서 돌아와 다시금 말에 머물려는, 노력을 본질적으로 갖추지 못하였다. 시인으로서는 중대한 결함이었던 것이다. 그 결함은 태만의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그 일체가 되는 체험이야말로, 마사키의 참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맹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는 그러한 일체감이 있다. 마사키는 그러한 맹인의 비유로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적인 체험을 도모한다. 


“그러나 맹인의 세계는 바로 지금의 손끝에만 있다. 세계는 결코 예고되지 않는다. 손끝으로 만지는 순간, 세계는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한순간만 홀연히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저 먼 곳에 있는 산이란 맹인에게는 끝내 존재하지 않는다. ~ 미래는 결코 침식당하지 않는다. 한순간 한순간 세계와 인간과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이다. 엄격한 긴장 속에 한순간 마다 새로움을 얻는 세계와 인간의 투철한 관계. 그 경악, 그 행복. ~ 예고된 미래를 지니지 않은 단 한 번의 절대적 순간. 분명 그 순간이야말로, 아니 그 순간에 있어서만, 자신이 참되게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은밀한 예감에 휩싸이며,”


마사키가 좇는 환영, 현실과 환상의 틈새를 누비며 날아다니는 우아한 날갯짓의 나비와 아름다운 여인은 그가 일체되고자 한 세계였다. 그는 그러한 일체를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결국에 한 마리의 나비로, 바라보기도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나비로 자신이 곧 세계가 되는 일에 성공한다. 그것은 사유도 없고 따라서 의미도 발생하지 않는 그러한 무의 세계, 즉 아름다움과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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