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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노트

결괴 - 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 히라노 게이치로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가장 불편하고 날카로운 냉소는 시대에 대한 진실한 애정에서 비롯한다


 일본 도시의 도처에서 범죄성명서가 동봉된 토막난 시체가 잇다라 발견된다. 이 범죄의 희생자는 오사카 근교에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던 료스케라는 인물이며, 가해자는 도모야라는 중학생 소년과 스스로 악마로 일컫는 조력자 시노하라 유지다. 악마는 이 살인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얻고 나아가 사회의 시스템 중추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길 기대하며, 실제로 그의 추종자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살인행위를 이어나간다. 

소설의 진행은 장르상 스릴러의 형식으로 복잡한 플롯을 통해 긴박하게 흘러가지만, 그 재미는 직접 소설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고 대부분의 장치와 지류가 되는 이야기들을 사상하고 주제 의식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나갈까한다. 


 “보통 사람이 아무 의미 없이 옆에 있는 놈을 푹 찌르는 게 가장 심각한 시스템 에러에요.”


 이것은 요즘 각국에서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묻지마 살인에 대한 언급처럼 보인다. 살인의 표적은 위의 말처럼 아무런 맥락이 없는 불특정한 것이었지만, 료스케가 희생자가 된 것에는 좀 더 부연이 필요한 까닭이 존재한다. 악마는 료스케가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하던 고민글에 친밀하고 진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666’이라는 필명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촉을 계기로 악마는 료스케와의 만남을 유도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를 첫 희생자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왜 그는 그를 죽여야만 했을까? 그것은 료스케의 행복에 대한 갈구에서 비롯한다. 악마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의 타고난 무능함을 망각했다. 그런 이유로 료스케는 어릴적부터 줄곧 형을 질시해왔으며, 태생부터 달리 조건되어진 인간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것은 그가 당연한 귀결에 해당하는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한 원인이었다. 악마 입장에서 료스케의 무책임한 행복에의 갈망은 이 사회가 부조리한 모습으로 억지스럽게 유지되는 동력이었다. 

 도모야는 학급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로 왜소한 체격의 은둔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에게는 짝사랑하는 아유미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어느날 같은 학급의 운동부 출신 남학생이 그녀와의 은밀한 관계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핸드폰에는 그것을 증거하는 사진이 담겨있었고 도모야는 그것을 몰래 훔쳐 인터넷에 게시한다. 이러한 혐의를 두고 그는 강력한 용의자로 의심받아 그 남학생을 비롯한 급우들에게 모욕적인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인터넷 상에 복수를 예고하는 시나리오를 게시하며 자신의 억압된 분노와 욕망을 표출하고 이때 조력자인 악마가 그의 앞에 등장한다.


 “너는 죽이는 인간으로 이 세상의 선택을 받았어. 유전과 환경을 조합한 데이터를 미연의 살인에서 프로파일링한 결과 최적의 인물이 정해졌지, 그게 너야~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인간과 똑같아 질 순 없어~ 네가 비할 데 없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거나, 용모가 수려해서 남들에게 사랑받는다고 치자. 혹은 엄청나게 부자라고 생각해봐. 그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면, 아니 그중 어느것이라도 그럭저럭 충족되면 세계는 너를 살인자리스트에서 제거했겠지.”


 범죄성명문 中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론은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인간들은 누구하나 똑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 뿐입니다. 이 세상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내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탈자의 한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법률과 도덕에서 완전하게 이탈하는 겁니다. 나는 세상이 인간의 수만큼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악마가 도모야의 살인을 돕고자 접근한 이유와 료스케를 희생자로 삼은 이유는 일치한다. 애초에 그들에게 허락될 수 없는 행복을 갈망한 죄를 일깨우는 것, 그러므로써 사회가 가진 허위의 동력을 폭로하는 것이다.


 “왜 이 구멍난 시스템이 파탄나지 않을까? 왜 인간은 이렇게 취약한 시스템을 유지하려할까?~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지. 그 은혜라는 것은~ 행복이야~ 인간은 쾌락을 부정할 순 있어! 그러나 행복을 부정하는 건 용납되지 않아!~ 행복은 가장 세련되고 첨예한 현대의 파시즘이야.”


 한편 이 살인사건의 배후로 강력하게 의심받는 용의자인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인물이 존재하는데, 그는 료스케의 친형으로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에 암영을 드리우는 역할을 하는 다카시다. 그는 어릴적부터 동생의 용렬함과 뚜렷이 차이나는 빼어난 지성과 용모를 소유한 남자로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에서 미묘한 거리감을 제공하는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비범성은 자신의 친부모와 동생으로부터 소외를 겪는 데도 주요하게 작용하며, 다카시는 가족과 결속되고자 하는 심리에서 다정하고 희생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가족들은 그에게 낯선 이질감을 지우지 못한다.


 “최근들어 내가 하는 말에 몹시 혐오감이 들어~ 내가 유용하게 쓰일 때도 왠지 패러디 같다는 기분이 들어.~ 난 외국에 있을 무렵부터 말에 대한 생각을 저주하게 됐어. 말이라는 건 자유자재로 구사할 때보다 오히려 능란하고 손쉽게 입에서 나올 때, 실로 통렬하게 사람을 배신하는 게 아닌가 싶더군. 그건 저주스러운 실감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라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그나마 쓸 만한 것이라고는 말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말이지, 그 유일한 능력이 때때로 구역질날 만큼 불쾌하게 느껴지는 거야.~ 보들레르는 ‘스토이시즘’은 단 하나의 의식밖에 없는 종교다‘라고 말했지. 그게 뭐라고 생각해?─자살이야.”


 동생의 살인사건을 겪으면서 다카시의 염세적인 태도는 더욱 짙어질 뿐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을 수 없는 폭력의 근원에 대해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의 문제일까? 그 선택하는 자유의 방향조차 결국은 유전과 환경이라는 말로 회수될거야.”─다만 그는 가족이 슬픔과 그로 인한 해체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진심 어린 노력을 벌일 뿐이다. 그러나 용의자의 혐의에서 벗어난 뒤에도 가족들은 다카시에 대한 꺼림칙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다카시는 이 근본적인 소외로 인한 고독으로 생을 포기하는 데 이른다.

 작가의 행복과 죄에 대한 통렬한 직관은 사회를 관통하는 달갑지 않은 질서를 폭로한다. 그리고 다카시라는 인물을 통해 시종일관 음울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카시는 게이치로의 페르소나에 해당한다. 생래적으로 폭력의 싹이 결정된다는 결정론은 평등의 기치 아래 현대의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의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폭로하는 바 인간의 많은 조건이 미리 정해져있다는 사실은 점차 자유를 희롱하며 진실의 자리를 차지해 간다. 더불어 고착화되는 계급적인 간극은 이러한 차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이다.  

 ‘결괴’에서 다뤄지는 소재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폭력들이고 그에 대한 태도 역시 냉소적임에도, 작가에게서 인간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 모순적인 감상인가. 하지만 그의 담담한 진술들은 박민규의 글을 읽을 때에 느껴지는 특유의 냉소와 애정이 있다. 다카시가 보통의 인간들에게 가지는 연민과 진실된 호소에는 무자비한 질서 속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흘러가는 인간들, 그 무기력함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폭력의 나약한 성질에 접근하므로써 작가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허술하고 너절한 조건들마저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