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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노트

'모비딕' - 허먼 멜빌


모비딕 –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바다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사그러들줄 모르는 인간 심연의 이끌림이다. 육지 생활의 안녕과 풍요에 대한 만족이 점차 무기력한 나태으로 느껴지던 이슈메일은 넷티컷 사람들처럼 포경선에 올라 머나먼 항해에 떠날 마음으로 가슴에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그리고 넷티컷의 어느 여인숙에서 만나게 된 이국의 작살잡이 퀴퀘그와 함께 에이해브 선장이 이끄는 피쿼드 호에 승선하게 된다. 

이 늙은 선장의 정체는 항해가 시작된지 수 일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은 채 묘한 신비로움과 공포감을 자아낸다. 출항 전 어느 예언자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에이해브는 ‘모비딕’이라는 악명 높은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후 그를 사로잡으려는 집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8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장대한 소설의 말미까지 에이해브 선장의 이 편집광적인 태도는 단순히 광기의 소산으로 나타날 뿐이다.

작가는 이 글의 대부분을 오늘날의 소설 양식과는 색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간다. 고래의 분류를 시작으로 고래의 얼굴과 그들의 피부, 꼬리, 두개골, 지느러미 등에 관한 서술을 박물학적 연구자의 태도로 시종일관 시시콜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 소설을 고래에 대한 일종의 연구서로 착각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모비딕’은 출간 당시 한동안 서점의 수산업 코너에 꽂혀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쨌건 현대에 이르러 허먼 멜빌이 각계의 평론가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이 되어 줄 진귀한 표현과 특유의 서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게 ‘모비딕’을 읽게 된 동기였다. 그러나 200년이라는 시차와 당대의 아메리카라는 문화적 거리감과 언어의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성질 등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이에 완전히 압도되는 경험을 공유할 수 없었다. 


“저기, 항상 넘칠 듯이 가득 차 있는 술잔의 가장자리 옆에서 따뜻한 파도가 포도주처럼 붉어진다. 황금빛 이마가 푸른 바다의 깊이를 잰다. 잠수하는 태양은 정오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위로 올라 가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언덕 때문에 나는 지친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는 이 롬바르디아의 철제 왕관이 너무 무거운 것일까? 하지만 이 왕관에는 많은 보석이 박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왕관을 쓰고 있는 나에겐 멀리까지 비치는 그 섬광이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은 내가 이 눈부시게 현란한 왕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이 왕관은 황금이 아니라 쇠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이 왕관은 쪼개져 있다. 내 머리는 단단한 금속에 탕탕 부딪히는 것 같다. 그렇다. 내 두개골은 강철이다. 머리를 심하게 강타하는 싸움에서도 투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이는 소설 내내 등장하는 격정적이고도 감격에 찬 화법의 한 예이다. 반복되는 비유와 과장은 이 말하기 방식이 일상의 것보다는 어떤 연극적 장면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는 발화 자체의 생경함이라기 보다도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한층 더 어색해지고, 직역을 지나치게 고수하려는 번역가의 태도 때문에 문학적인 시취에 훼손이 발생하는 경우다. 따라서 이 안타까운 소실을 막기 위해서는 예의 문장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대해서는 더 신중한 심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이 그에 성공한 표현들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사색에 잠긴 인간의 수려한 이마는 아침 햇살을 받은 동녘 하늘 같다. 목장에서 쉬고 있는 황소 이마의 곡선에는 웅장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험한 산길에서 대포를 밀어올리는 코끼리의 이마는 웅대하다~ 세익스피어나 멜란히돈의 이마처럼 높게 솟거나 낮게 내려간 이마는 드물지만, 그 눈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말고 잔잔한 산중 호수 같고, 눈 위에 있는 이마의 주름살에서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사냥꾼들이 눈에 찍힌 사슴 발자국을 따라가듯 사슴뿔처럼 갈라진 사상들이 호수로 물을 마시러 내려 온 흔적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향유고래의 경우에는 이마에 본래 갖추어진 고귀하고 위대한 신 같은 위엄이 너무 크게 확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자연계의 어떤 생물을 볼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신성’과 그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향유고래의 이마에서 어느 한 대상을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목구비가 하나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눈, 코, 귀, 입도 없고 얼굴도 없다. 향유고래에는 진정한 의미의 얼굴이 없다. 주름투성이 이마가 넓은 하늘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다.”

“금빛 찬란한 황금빛 태양, 그것만이 유일한 진짜 등불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다~ 태양은 버지니아의 대습지도, 로마의 저주받은 황야도, 광막한 사하라 사막도 달빛 아래에 있는 수백만 마일의 사막과 비애도 감추지 않는다. 태양은 지구의 암흑면이며 지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감추지 않는다. 따라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 자는 진실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거나 아직 인간이 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진실한 사람은 슬픔의 인간이다.”



이 소설이 말미에 다다를수록 에이해브 선장의 편집광적인 태도에 대해 정당화가 이루어지고, 같은 배의 선원들 역시 그에 점차 동조하게 되어간다. 줄곧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스타벅 항해사 역시 결국에 가서는 선장의집념에 대해 존경과 고귀한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광기에 대한 수긍과 자발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서사는 ‘모비딕’이 가지는 가장 커다란 매력이 아닌가 한다. 다음은 독자들로 하여금 에이해브의 파멸적인 광기가 어떻게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지를 잘 나타내는 문장이다. 


“흰 고래는 모든 사악한 존재의 편집광적 화신으로서 에이해브의 눈 앞을 끊임없이 헤엄치게 되었다~ 흰 고래에게 모든 악의 근원을 돌려 미친 듯이 그것에 덤벼들었다~ 이 모든 악이 미쳐버린 에이해브에게는 모비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었고, 그리하여 실제로 공격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어느 적도 해역에서 마침내 모비딕의 출현을 목격한 선장은 그와의 길고 긴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 다른 선원의 전범이 되려는 듯이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발휘하며 스스로 돛대 위에 오르고 가장 먼저 보트를 내려 모비딕을 추적한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한 노력에도 거대한 생명은 마치 죽음의 전령처럼 선원들을 하나 둘 바다 아래의 암흑으로 데려간다. 사흘에 거친 격렬한 전투 끝에 보트는 처참히 으깨어 지고 에이해브 역시 작살 밧줄에 휘감겨 바다에 가라앉아버린다. 이것으로도 성이 덜 풀린 모비딕은 그들의 본선에 마저 돌연한 일격을 가해 결국 적도의 태양 아래 피쿼드 호는 침몰하며 그들의 장엄한 전투를 마감한다. 

에이해브는 소설 내의 예언자가 가졌던 두려움과 불안한 조짐처럼 자신의 패배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 전투에 이르러 언제나 이성적으로 자신을 조력해왔던 스타벅의 참여를 만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고귀한 패배를 향해 용맹한 걸음을 이어나간다. 죽음 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신의 지평으로 담담히 자신을 투신한다.


“이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지금 이 팔을 들어올리는 것은 나인가, 신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하지만 위대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심부름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면, 스스로 회전할 수 있는 별은 단 하나도 없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모든 별을 움직인다면, 이 보잘것없는 심장은 어떻게 고동칠 수 있고, 이 작은 두뇌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내가 아니라 신이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두뇌를 돌아가게 하고,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이보게 우리 인간은 저기 있는 양묘기처럼 세상에서 빙글빙글 돌려지고, 운명은 그 기계를 돌리는 지레라네. 저 미소 짓는 하늘과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다를 보라! ~ 하지만 참으로 온화한 바람과 하늘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