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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노트

만(卍) - 다니자키 준이치로


만(卍) - 다니자키 준이치로(김춘미 옮김, 문학동네)


가카우치 부인은 스무살 중반의 젊은 여인으로 남편과의 관계에서 별로 만족해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그녀는 그림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빼어난 미모의 미쓰코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는 가카우치 부인의 그림을 비화로 둘 사이에 불건전한 추문이 떠돌게 되고 도리어 이를 계기로 둘의 관계는 서로 돈독해지게 된다. 그런데 이 관계는 차츰 연인 관계와 흡사하게 진행되어간다. 가카우치 부인의 남편인 고타로는 이를 눈치채고는 묘한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히지만, 그녀의 행동은 더욱 대담해지고 노골적인 요구를 드러낸다. 그런데 부인에게 미쓰코로부터 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미쓰코에게 와타누키라는 또다른 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그녀는 심한 배신감에 쌓여 미쓰코와의 연락을 끊고 학교도 그만두고 만다. 한편 미쓰코는 가카우치 부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임신을 했다는 거짓 계략을 꾸미고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둘 사이의 애정 관계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와타누키는 가카우치 부인에게 일종의 서약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미쓰코에 대한 사랑을 공히 인정하자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계약의 낌새를 눈치 챈 미쓰코는 가카우치 부인을 추궁하여 와타누키에 대한 감추어진 비화들을 늘어놓는다. 그는 성적불능인자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며 그것을 미끼로 삼아 지난 학교에서의 추문과 여관방 사건들을 모의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쓰코와 부인은 변호사인 고타로의 도움을 얻어 와타누키의 방해를 피하게 되고, 그들은 거짓으로 정사(情死)를 꾸며 자신들의 사랑을 인정받고자 하는 음모를 계획한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는 와중 부인이 약에 취해있는 동안 고타로와 미쓰코가 정을 통하게 되고, 이로써 남편 역시 미쓰코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리게 된다. 결국에는 미쓰코와 남편 그리고 가카우치 부인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 간의 사랑을 견제하는 기형적인 생활을 지속해나간다. 그러던 나날 중 와타누키가 이 내밀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흘려서 그들의 사생활은 세상에 공공연히 밝혀지게 되어 궁지에 몰린 세 사람은 함께 정사(情死)를 감행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동반 자살 시도에서 요행히 살아난 가카우치 부인이 고백체 형식으로 밝히는 사건의 전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는 만족을 느끼지 않는 법인가. 채워지는 만큼 결핍을 낳는 사랑의 허기진 굴레를 벗어나는 지혜는 무엇일까. 

작품 내에서 “아름다운 악마”로 표현되는 미쓰코에 대한 성격 묘사는 다음과 같다. “미쓰코라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도 약점을 보이지 않고 상대방이 자기를 숭배하게 만들고 싶어 한대요. 절세미인인걸 스스로도 잘 알아서 늘 고고한 자세로 누군가한테 숭배받지 않으면 쓸쓸해하고, 자기쪽에서 접근하는 일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믿는대요.”

현대에서 자기애라 하면 덮어놓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취할 때가 많다. 그러나 스스로가 가진 숭고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 다시 말해 여타의 너절하고 상스러운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그들의 태양이 되고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보존의 욕구로 이해하면 너그럽게 용서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숭앙받아 마땅한 태도가 아닌가. 

만인이 똑같다는 생각의 지배에, 물질적인 계급은 그렇게 거침없이 구분하면서도, 인간이 가진 독창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는 훼손되고 만다. 미쓰코는 분명 비록 섬세한 감각을 지니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졌을 것이다. 와타누키의 이 호소가 나타내듯 말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한 사람이 사랑하려고 하는 게 잘못이다.” 

이 거스를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미쓰코 앞에 사람들은 침몰되어 갔다. 이러한 숭배에 가까운 사랑의 정서가 지금의 계약적이고 교환적인 사랑 관계의 이해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속성일테지만, 우리는 문학을 통하여 그 위험스럽고 아슬아슬한 절대의 미로 인도된다. 미를 제외하곤 아무런 속박도 없는 삶, 그와 같은 낭만이 앞으로의 시대에 허락되는 때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만인은 오로지 만인인 것이지 어떤 단일성으로도 포획할 수 없기에 그만큼의 자유로운 사랑도 아직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