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타락론 - 사카구치 안고

sinook 2017. 3. 16. 13:37



사카구치 안고 – 단편집 ‘백치, 타락론 외’ (최정아 번역, 책세상)



「타락론」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패전 후의 일본에 대한 자기 반성 요구

“반년 사이에 세상 변했다. ~인간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러한 것이며 변한 것은 세상의 겉껍질일 뿐이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상태로 끝나게 하고픈 바람은 사람의 일반적 심정 중 하나인 듯하다. ~나 또한 수년 전에 지극히 친했던 조카딸 하나가 스물한 살에 자살했을 때, 아직 아름다울 때 죽어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도의 허위스런 바탕에 대한 고발


“무사도라고 하는 조야하기 이를 데 없는 한 법칙은 인간의 약점에 대한 방벽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일본인은 가장 증오심이 적은 동시에 또 오래가지 않는 국민이며,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 하는 낙천성이야말로 실제 일본인의 거짓없는 심정이다. 어제의 적과 타협하는 어니 서로 속을 다 드러내보이는 사이가 되는 일은 일상다반사이며, 원수이기에 더욱 속을 드러내 보이고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어 이군(二君)을 섬기려하고 어제의 적도 섬기려 든다. ~우리는 규약에 순종하지만 우리의 거짓 없는 심정은 규약과는 반대이다. 일본의 전사의 무사도가 아닌 권모술수의 전사이며~”


귀족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의 천황제 비판


“나는 천황제에 대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정치적 작품을 본다. 천황제는 천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존립의 정치적 이유는 이른바 정치가들의 후각에 의한 것으로, 그들은 일본인의 성벽에 대해 통찰하고 그 성벽 속에서 천황제를 발견했다.”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 아래쪽을 전차가 돌아갈 때마다 전차 속에서 머리를 숙어야 하는 바보 짓거리에 기막혀했다. 하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밖에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그 바보스러움을 비웃지만 다른 경우에 대해서는 그와 다를 바 없는 바보스러운 짓거리를 자신도 행하며 산다. 그러면서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대해서는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한심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숭배하며 살면서 단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상태로 끝나게 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은 작고 연약한 인간한테나 어울리는 심정이라 하겠으며, 내 조카딸의 경우 역시 자살 따위는 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고 살다가 지옥에 떨어져 암흑의 황야를 방황하기를 바랐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 자신이 자신에게 짐 지은 문학의 길은 그와 같은 황야 유랑의 길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상태로 끝나게 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미완의 미는 미가 아니다. 그것이 당연히 떨어져야 할 지옥에서의 편력, 그 윤락 자체가 미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르게 될 터이다.”


“산다는 일은 더욱 복잡하고 이유를 알기 힘든 것이다.”


어떠한 술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전락


“도쿠가와 바쿠후의 사상은 사십칠 인의 사무라이를 처형함으로써 그들을 영원한 의사로 남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 결과 사십칠 인의 타락 만은 막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인간 자체가 언제나 의사에서 범속으로 범속에서 다시 지옥으로 계속 전락해가는 수순을 막을 도리는 없다. 절부는 이부종사라 하고,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는 규정을 제정해본들 인간의 계속되는 전락을 막을 길은 없고, 설사 처녀를 살해함으로써 그 순결을 유지하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타락을 향하는 평범한 발소리, 쉼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발소리를 듣게 될때, 인위의 비소함, 인위에 의해 지킬 수 있었던 순결의 비소함 따위는 물거품처럼 허망한 환여에 불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궁지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의 비소함


“산다는 일은 실로 유일무이한 불가사의다. 예순일곱 살의 장군들이 할복도 하지 않고 똑같은 형색으로 줄지어 법정에 끌려나오는 장면은 종전에 의해 새로이 발견된 인간의 진실을 말해주는 장관이라 하겠다. 일본은 패했고 무사도는 망했지만, 타락이라고 하는 진실의 모태에 의해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살아남아라, 타락하라. 그 정당한 절차를 따르는 것 외에 진실로 인간을 구원할만한 편리한 첩경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들은 자신의 타락을 알아채지 못하고 애먼 데서 구원을 바란다. 인간의 타락을 관조하는 쓸쓸함에 어떤 의욕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다만 타락할 것이라면 그토록 저열하고 보잘것없는 진실을 드러낼 것이라면 올바르게 타락해야하는 것.


“인간, 전쟁이 아무리 처참한 파괴와 운명으로 인간을 사로잡으려 해도 인간 자체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전쟁은 끝났다. 특공대 용사는 벌써 암거래상이 되었고 미망인도 이미 새로운 연인의 얼굴 때문에 가슴이 부풀었지 않은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간은 타락한다. 의사도 성녀도 타락한다. 그것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그럼으로써 인간을 구원할 수도 없다. 인간은 살고, 인간은 타락한다. 그 진실 이외에 인간을 구원할 편리한 첩경은 없다.

전쟁에 졌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타락하는 것이며 살아 있기에 타락할 뿐이다. 허나 영원히 타락하지는 못하리라. 왜냐하면 인간은 가녀리고 위약하며, 그 때문에 어리석은 존재지만 완전히 타락하기에도 너무 약하다. 인간은 결국 처녀를 살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무사도를 짜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며 천황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처녀가 아닌 자신의 처녀를 살해하고 자신의 무사도와 자신의 천황을 고안해내기 위해서는 사람은 올바르게, 타락해야 할 길을 온전히 타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타락할 필요가 있다. 타락해야 할 길을 온전히 타락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에 의한 구원 따위는 겉껍질에 불과한 허황한 거짓이다.”